바울이 자랑하는 것 빌립보서 3장 4-9절/차용철 목사 “4. 나 역시 육체를 신뢰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니 5.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에 관한 한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에 있는 의에 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8.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는 동안 바울이 세운 빌립보교회에 유대인들이 나타나 바울의 가르침과 다른 교훈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득구(以信得救)의 교훈을 가르쳤으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 언약의 징표인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온전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므로 신앙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유대인들만이 가진 정통성 때문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교훈을 변호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1. 바울은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5-6절). 유대주의자들이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요구하고 율법 준수를 요구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그들의 정통성에 매력을 가지게 되고 반면 바울에 대해서는 정통성을 의심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구원에 있어서 할례와 율법 준수가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려 할 때 빌립보 교인들이 생각하기를 바울은 유대인이나 히브리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한다는 의구심을 가졌으리라는 암시를 얻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도 유대인이고 율법적으로 흠이 없고 오히려 율법적으로 유대주의보다 낫다는 점을 피력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2절에는 “그들이 히브리 사람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라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열심에 관한 한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에 있는 의에 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6절)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냅니다. ①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자였습니다. 유대인 특히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표징인 할례를 받았습니다. “너희 대대로 모든 사내아이는 집에서 태어난 자든지 또는 네 씨에서 난 자가 아니라 타국인에게서 돈으로 산 자든지 난 지 여드레가 되면 너희 가운데서 할례를 받을지니라.”(창17:12)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 살을 베어 할례를 행할 것이요”(레12:3). 아브라함의 적자 이삭의 후손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나 이스라엘 후손은 30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더욱이 이방인은 유대교로 들어올 때 성인이 되어서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바울이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② 이스라엘의 족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택한 백성의 대표자인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얻은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언약 백성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으로서 개종한 자가 아니라 순수 유대인 혈통이라는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③ 베냐민의 지파였습니다. 베냐민은 야곱이 특별히 사랑한 라헬의 아들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왕을 배출한 지파이고 전쟁 때 영웅적으로 싸우기로 유명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이 남북조로 갈라질 때 유다 지파와 함께 남 왕조를 이루어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지속시킨 지파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여로보암이 10지파를 데리고 반역할 때에 반란에 참여하지 않고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왕통에 속한 르호보암을 좇은 지파입니다. “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의 온 집과 베냐민 지파를 모았는데 선정된 자들 곧 용사들이 십팔만 명이더라. 이들이 이스라엘의 집과 싸워 왕국을 다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가져오려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의 온 집과 또 백성의 남은 자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24. {창조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올라가지 말며 또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은 내게서 났느니라, 하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창조주}의 말씀에 따라 떠나서 돌아갔더라. 25. 그때에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에 세겜을 건축하고 그 안에 거하며 또 거기서 나가 브느엘을 건축하고 26.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제 왕국이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창조주}의 집에서 희생물을 드리려고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그들의 주 유다 왕 곧 르호보암에게로 다시 돌아가 그들이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다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것에 관하여 왕이 의논한 뒤 금송아지 둘을 만들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이 너무 큰일이로다. 오 이스라엘아,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을 보라, 하니라. 29. 그가 하나는 벧엘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으므로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이 금송아지들 중 하나 앞에서 경배하려고 단에까지 갔기 때문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의 집을 짓고 레위의 아들들이 아닌 자들 곧 백성 중에서 가장 천한 자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며 32. 또 여로보암이 유다에 있는 명절처럼 팔월 곧 그 달 십오일에 명절을 정하고 또 제단 위에 헌물을 드리니라. 또 그가 벧엘에서도 그와 같이 행하여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희생물을 드렸으며 또 자기가 만든 산당들의 제사장들을 벧엘에 두었더라. 33. 이와 같이 그가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여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에 자기가 벧엘에 만든 제단 위에 헌물을 드렸으며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절을 정하고 제단 위에 헌물을 드리고 분향하니라.”(왕상12:21-33) 여로보암을 따른 북 이스라엘 10지파가 벧엘과 단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7월 15일 절기를 8월 15일로 바꾸고 제사장을 아무나 세울 때에도 율법적 정통성을 유지한 지파입니다. 앗수르의 이민 정책으로 북 이스라엘 10지파가 혼혈(混血)될 때에도 순수성을 유지한 지파입니다. 바벨론 포로 때에도 신앙에 앞장섰고(에스더와 모르드개도 베냐민 지파였음) 귀환 때에도 남아있지 않고 성전 건축을 위해 유다 지파와 레위 지파와 함께 유다로 귀환했습니다. ④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은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이 있었고 헬라파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팔레스틴 출신 유대인들을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은 이방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곧 디아스포라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후 돌아오지 못하고 그 곳에 정착하거나 바벨론과 바사와 헬라와 로마를 거치면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그들이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은 히브리어(시리아어)를 사용했고 헬라파 유대인은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고유 문화를 고집했고 헬라파 유대인은 헬라 문화를 수용하는 편이었습니다. 이들을 구분하는 것은 언어였는데 히브리파 유대인은 헬라파 유대인이 헬라 곧 이방 문화에 동화된 자들이고 자신들만이 정통성과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바울은 길리기아(지금의 터어키 남부) 다소 출신이지만 부모가 히브리인으로서 아람어를 사용해서 바울도 아람어를 사용했었습니다. 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הפרושים)은 분리된 자들 이란 뜻으로서 바리새파는 유대 종파 가운데 가장 업격한 종파였습니다. 당시 사두개파와 에세네파와 함께 3대 당파 중 하나입니다. 바리새파는 당시 유대교가 헬라화 되어가는 것을 반대하고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율법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것을 이어받아 율법 해석과 함께 엄격한 율법 준수를 하려는 율법 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학파입니다. 그 때 반대파들에서 이를 비난하기 위해 그들을 바리새인(분리된 자들)이라고 했는데 그들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바리새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바리새인으로 불리는 것에 전통성을 가진 증거로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에 속했을 뿐아니라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자였습니다. “진실로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도시 다소에서 태어났으되 이 도시에서 가말리엘의 발밑에서 자라며 조상들의 율법의 완전한 방식에 따라 가르침을 받았고 이 날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을 향해 열심이었노라.”(행22;3). 가말리엘은 당시 예루살렘에서 바리새파 가운데 가장 높이 존경받는 학자(랍비)였습니다. 당시 가말리엘에게 배운 자는 바리새인 중에서도 가장 신학적 정통성을 가진 자로 간주되었습니다. ⑥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던 자입니다. 열심 (ζηλοs 젤로스)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에 대한 특별한 열성을 보이는 셀롯당의 어원이 되는 말입니다.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출애굽 당시 가나안으로 들어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족장들까지도 모압, 미디안 등의 이방 여인들과 행음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이 미디안 여인을 자기 장막으로 데려와 행음하는 일을 보고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분개하여 창을 들고 들어가 찔러 죽였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순결에 대한 열성이었습니다. 주전 168년 시리아가 통치할 때 유대교 말살 정책을 썼는데, 제사장 마타티아스와 그 아들들(마카비 형제들)이 그 통치자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고 비느하스의 열성을 재현하려 했습니다. 또 1세기 중반 로마 통치에 항거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던 투쟁하던 투사들도 비느하스 열성을 본받으려 했기 때문에 그들을 열성당(zelots)으로 불렀습니다. 그들은 그 전통에서 열성 (zelos)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그것들을 범하는 자들을 폭력으로 대항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열성당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리새인들보다 더 열심히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하나님의 율법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들이라고 생각되는 그리스도인들을 폭력으로 제거하려 했습니다. 바울도 그들 가운데 앞장서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2. 바울은 과거 자랑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버렸습니다 (7-9절).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경제가 한창 다시 일어설 무렵이었습니다. 일본의 한 대기업이 미국 일류대학 출신의 고급 엔지니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급적 박사학위도 있고 일본어도 능숙한 미국인을 선호했습니다. 오랜 수소문 끝에 마침내 그러한 사람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는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선교를 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높은 대우와 여러 종류의 혜택을 약속하면서 자기들의 회사에 와줄 것을 제의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보수가 적어서 그러는 줄 알고 파격적인 제안을 갖고 찾아갔지만 그 때도 그의 대답은 “노”였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물론 대우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일거리가 나의 삶을 바칠 만큼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적으로 흠이 없을 만큼 좋은 배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고, 이스라엘 족속이었고, 베냐민 지파였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고, 바리새인이었고,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나 역시 육체를 신뢰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니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4-5절). 바울은 전에는 유대주의자들처럼 혈통과 율법에 대한 열심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잡아 오기 위해 다마서커스로 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경험하고 회심(回心)을 통해 인식 변화가 생겼습니다. “4. 가 이 길을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자들과 여자들을 다 결박하여 감옥에 넘겨주었노니 5. 대제사장과 장로의 신분을 가진 모든 사람들도 나에 대해 증언하느니라. 내가 또한 그들로부터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다마스쿠스로 가서 거기 있던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려 하였노라. 6. 내가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정오쯤 되어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와 나를 둘러 비추므로 7. 내가 땅에 쓰러져 들으니 한 음성이 있어 내게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하니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참으로 그 빛을 보고 두려워하였으나 내게 말씀하신 분의 음성은 듣지 못하였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 하매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하도록 정해 놓은 모든 일을 거기서 듣게 되리라, 하시니라. 11. 내가 그 빛의 영광으로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의 손으로 인도를 받아 다마스쿠스로 들어갔노라.”(행22:4-11). 그 후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가장 가치있고 고상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완전한 가치전도(價値顚倒)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인한 변화만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14에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나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좀더 알기를 원했고 얻기를 원했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일에 방해되는 것이라면 아무리 좋았던 것들도 해로 여겼고 배설물(σκυβαλα 스퀴발라)처럼 여겼습니다. 개에게 던지는 똥이나 음식 찌꺼기나 쓰레기처럼 여긴 것입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원했습니다. (8절).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 인줄 알고 그에 대해 좀더 알기를 원했습니다. 사귀기를 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좀더 알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누구인지, 그가 이 땅에 왜 오셨는지, 그가 왜 십자가에 죽으셨는지,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그가 오늘날 나의 삶에 어떻게 관여하시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와 깊이 사귀는 것이 중요합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원했습니다. (8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통해 그와 연합되길 원한 것입니다. 그의 성품에 참여하길 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5-57절에 “내 살은 참으로 양식이요 내 피는 참으로 음료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느니라.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므로 상호 내주하여 연합하고 그의 성품이 자기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주의 몸으로 된 교회를 세우고 주께 받은 사명 감당하느라고 고난을 받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터이나 악한 자들과 유혹하는 자들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딤후3:12-13)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해 내가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들 뒤에 있는 것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해 내 육체 안에 채우노라.”(골1:24) “보라, 이제 내가 예루살렘에서 내게 닥칠 일들을 알지 못한 채 영 안에서 결박당하여 거기로 가노라.”(행20:22) ③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원했습니다. (9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얻을 뿐 아니라 그의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재림 날에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발견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로서 인정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나이가 들었을 때에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하고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또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주께서 보상으로 보답해 주시는 일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니라.”(히11:24-26) 히브리서10장 32-35절에 “그러나 너희가 조명을 받은 뒤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냈던 이전의 날들을 회상해 보라. 한편으로는 너희가 비방과 고난으로 말미암아 구경거리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취급받은 자들과 사귀는 자들이 되었으니 너희에게 하늘에 더 낫고 영구한 실체가 있는 줄 너희 자신이 알므로 결박 중에 있는 나를 너희가 불쌍히 여겼고 너희 재산을 노략당하는 것도 기쁘게 여겼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의 확신을 버리지 말라. 그것이 큰 보상의 보응을 얻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속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가장 담대하고 주님께 가장 관심을 끄는 자가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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