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난을 이기는 지혜
고난을 이기는 지혜 베드로전서 5장 5-11절 / 이홍열 목사 “5. 너희 젊은 사람들아, 이와 같이 장로에게 복종하고 참으로 너희가 다 서로에게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 하라. 그리하면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8.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10.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신 분께서 너희가 잠시 고난을 받은 뒤에 너희를 완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정착시키시리니 11.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전5:6-11) 현대인의 심리상태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불안과 공포일 것입니다. 삶의 바다에 언제 불어 닥칠지도 모르는 고난과 좌절이라는 태풍 때문에 현대인들은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도 있고, 돈도 있고, 지위도 있는데 무엇엔가 쫒기는 듯 전전긍긍하며 막연한 두려움의 어둠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에 남한을 배제하고 단독으로 북한과 전쟁을 한다고 하는 것에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전국의 20만 명의 실업자가 생길 것이라는 어느 경제 단체의 보고가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T.V를 틀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 속에 몰아넣습니다. 자고 나면 회사가 문을 닫았다는 뉴스와 미국이 투자했던 기업들이 생산성 악화의 이유를 들어서 단물만 빼먹고 떠나서 지역 경제가 곤두박질친다는 소식에 더욱 힘들어합니다. 눈을 뜨면 집단 자살이요, 신문을 펴면 전쟁의 화약 냄새입니다. 크고 작은 고난의 파도가 밀려오는 이 시대 상황 속에서 참 평안은 없을까요? 닥쳐오는 고난과 불안의 공포를 물리치고 승리하며 사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 피할 길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 길은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바로 고난의 짐, 불안의 짐, 공포의 짐, 절망의 짐입니다. 오늘 아침 이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내어놓고 주님께서 주시는 쉼과 참 평안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고자하는 베드로전서는 서기 63년경 베드로가 기록한 편지입니다. 당시 전 세계에 흩어져 고통과 시험과 박해를 겪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낸 위로의 서신이요, 고난을 다루는 신앙의 지침서입니다. 당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초대 교인들은 수많은 고난과 공포에 직면하며 살았습니다. 언제 자신들이 그 사회에서 추방당할지 모릅니다. 언제 공권력의 테러를 당할지 모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상황을 비유한다면 면도칼로 고무풍선 면도하기 입니다. 면도칼로 고무풍선을 면도할 때 얼마나 조심스럽겠습니까? 행여 조금만 손이 삐끗해도 풍선이 터질까봐 그 얼마나 식은땀이 흐르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초대교인들은 그러한 극도의 불안감속에서 살았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불안 공포 고난에 가히 비교될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달걀 위를 걷는 듯한 초대교인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편지를 보내서 위로와 소망,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신앙의 지혜를 일러줍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이 시대 우리의 고난, 불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얻음으로 함께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고난을 이기는 지혜는? 여유를 가지고 인내하면서 그 마음을 미래에 두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입니다. 또 5장 10-11절에도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신 분께서 너희가 잠시 고난을 받은 뒤에 너희를 완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정착시키시리니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라고 말씀을 철저하게 고난의 유한성을 말합니다. 인간이 주는 것은 무한한 고통과 유한한 기쁨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유한의 고난과 무한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난은 잠깐이다. 너희에게 영원한 고난을 주려는 것이 내 뜻은 아니다. 순간의 고난을 너희에게 허락함은 너희를 향한 내 숨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고난을 이겨라. 영원한 기쁨을 예비하리라” 또한 베드로전서 5장 6절 말씀도 밝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그리하면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고난이 깊을수록 인내하면서 겸손하면 때가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신다 했습니다. 결코 고난의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조금 더 인내함으로 미래의 승리를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시길 축원합니다. 저에게 관이라기보다는 좀 고통스러운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 고민은 제가 개인적으로 비난을 듣는 일이 아닙니다. 만약 비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받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만큼 컸다는 증거이니까요. 상대할 가치가 없으면 비난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생활문제나 가정문제도 아니였습니다. 단지 생각만큼 교회가 빨리 성장되지 않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에 압박감, 소화불량, 두통,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소구함 교우들을 향한 미안함, 그런 문제들을 싸들고 지난 주 3일간 광주 수양관 가서 하나님과 기도로 씨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감동을 주십니다. “왜 그렇게 조급한가? 왜 그렇게 서두르는가? 목회는 마라톤을 해야 돼. 100m 달리기 식으로 뛰면 1Km도 못 뛰고 쓰러져. 100m달리는 이는 빠르긴 하지만 십리도 못가는 반면에, 걸어가는 이는 비록 느리지만 천리를 간다. 네 타임 스케줄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나의 타임 스케줄에 너를 맞춰라. 나는 뭐 계획도 생각도 없는 줄 아느냐? 인내를 가지고 걸어가라. 마음의 눈을 먼 미래에 두어라. 뛰다가 쉬지 말고 쉬지 말고 걸어라” 그런 감동이 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고난, 여러분의 고통을 모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인내하면서 기다립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통해 더 좋은 미래를 열어 주실 것이며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2. 둘째로 고난을 이기는 지혜는? 염려를 주께 맡기고 감사의 조건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베드로전서 5장 7절은 말씀합니다.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그분께 맡기라”는 말은 [맡기라]는 말은 믿어라하는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맡기기는 하지만 그 고민, 그 염려, 그 불안, 그 공포, 그 고통은 맡기고 믿지는 못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교회에 오실 때엔 염려와 근심을 주께 맡깁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그렇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주께 맡기자?” 하면서도 막상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실 때엔 내 염려 보따리는 어디 있지? 내 고민 가방은 어디 있지? 하면서 다 싸가지고 돌아가십니다. 주님께 맡겼으면 잊어 버려야 합니다. 버리지 못하고 맡기면 도로 찾아가게 됩니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맡기면 버리는 겁니다.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염려, 근심, 고난, 고민을 주님께 맡긴 다음엔 다시 찾아올 생각은 하지 마세요. D.J.Schwartz라는 기업 경영 상담가는 [고민의 수학]이라는 재미있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염려 근심 걱정은 계산하면 할수록 자꾸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예배인원이 뚝 떨어집니다. 왜 교인들이 안 나왔을까? 설교가 인기 없기 때문일거야. 모든 교인이 나를 반대하면 어쩌나, 결국 교회를 사임하게 될꺼야. 배운 기술도 없고 이 나이에 신입사원 취직도 안되고 신학교 졸업장은 쓸데가 없는데 당장 어디로 가지? 집사람과 태빈이는 어쩐다? 장모님도 무능한 사위를 문전박대 하시겠지? 아~! 내 인생은 끝장이구나!? 하면서 염려를 증폭시키면 시킬수록 염려와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염려! 불안! 이는 대부분의 경우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가상해서 걱정하는 수가 많습니다. 닥치지도 않을 미래의 일로 왜 지금 염려합니까? 염려는 주께 맡겨 버리십시오. 그리고 감사의 조건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기도여행을 떠날 때 라면 7개를 샀습니다. 그리고 유집사님이 김치 1병, 1회용 커피 3봉지를 싸 주셨습니다. 전 라면 7개를 늘어놓고 이것은 첫째날, 저녁, 요놈은 둘째날 아침 점심 저녁,그리고 이것은 세째 날 아침 점심 저녁에 끓여 먹어야지 하고 배정을 했습니다. 김치병에도 금을 그어놓고 여기까지는 첫째 날 저녁, 여기까지는 둘째날 아침 하는 식으로 먹을 분량을 정했습니다. 커피 3봉지도 늘어놓고 아침에 먹을까? 점심에 먹을까? 아니야 밤늦게까지 기도하고 공부하려면 저녁이 좋아? 그래서 하루에 한 봉씩 저녁 라면 먹은 후 커피를 마시기로 계획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튿날 저녁입니다. 라면 한 개를 끓여먹고 커피믹스 한 잔을 마시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없으면 굶어야 하는데 라면도 주시고 김치도 주시고 황송 하옵게 커피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면 한 그릇, 커피 한 잔 가지고도 감사할 수 있게 하시니 또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살아있다는 존재 자체가 그냥 감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염려 일랑 주님께 맡깁시다. 근심 걱정 불안 공포는 주님께 맡겨서 내어 버립시다. 오늘부터는 불행의 조건, 고난과 염려의 숫자는 세지 말고 감사의 조건을 헤아립시다. 생각해 보면 근심과 염려와 고난의 숫자보다 감사의 조건이 훨씬 더 많습니다. 감사-근심=감사 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할 수 있는 것이 근심거리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커피 한 잔에 감사할 수 있을 때, 염려와 불안의 공포는 더 이상 그 사람을 괴롭힐 수 없습니다. 3. 세번째 고난을 이기는 지혜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바쁜 사람에겐 고민이 없습니다. 불안이 없습니다. 공포가 없습니다. 바쁜 일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9절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주목합시다. “7.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8.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믿음을 굳게 하여 사탄을 대적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D.J.Schwartz의 [고민요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첫째가 바쁘게 일하는 것입니다. 첫째, 항상 무언가 바쁘게 움직이십시오. 고민요법의 첫째가 바쁘게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Schwartz는 목사가 아니기에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바쁘게 일하는 것은 좋지만, 과연 무엇을 위해 바쁜가하는 문제입니다. 돈을 위해 바쁘면 바쁜 만큼 염려나 불안도 늘어납니다. 세속적 쾌락을 위해 바쁘면 그만큼 허무한 마음도 증가합니다. 무엇을 위해 부주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바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일을 위하여, 주의 일을 위하여 분주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이 시대에 사탄을 대적하는 일에 바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 속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주저앉지 마십시오. 근심, 염려의 파도가 산더미처럼 밀려온다고 해서 손을 놓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물러서면 안 됩니다. 일하는 자에게 만이 재생의 기회가 옵니다. 일하는 사람만이 닥치는 고난을 승리의 기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여러분의 고난을 하나님이 맡아주실 것입니다. 4.마지막 네째로 고난을 이기는 지혜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굳게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한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 “비록 지금은 필요가 있어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잠시 근심하고 있지만 그 구원을 크게 기뻐하나니 이것은 너희 믿음의 단련이 불로 단련해도 없어지는 금을 단련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닥친 고난은 그리스도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에서 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코 여러분이 영원한 고통 속에 파묻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예레미야 애가 3장 32-33절을 보면 “그러나 그분께서 근심하게 하실지라도 자신의 많은 긍휼에 따라 불쌍히 여기시리니 그분은 고의로 사람들의 자녀들을 근심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 아니 하시로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이 솔로몬 왕이 죽은 후 둘로 갈라지고 기원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 당하여 세계 곳곳에 흩어집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왜 그 큰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속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800년 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백성은 전부 사도바울의 복음 수출의 전진기지가 됩니다. 800년전 흩어져 살아온 그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의 수출의 전진기지가 되어주지 않았다면 30년 안에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저 자신도, 철도고교 입학의 실패와 검정고시 2년 연속 실패, 그리고 고등학교 때의 학생회장 사전선거 운동으로 인해 유기정학을 받은 일들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아픔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통 속에서 저를 부르시고 신학교에 들어가게 하셨고 결국 주의 종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좋고 더 훌륭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하나님의 계획은 고통이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인 베드로전서 5장 10-11절이 그 해답입니다.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신 분께서 너희가 잠시 고난을 받은 뒤에 너희를 완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정착시키시리니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이유는 여러분을 온전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굳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강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터를 견고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굳게 믿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백인 교회가 있었습니다. 금십자가에 큰 파이프 오르간, 대리석으로 빛나는 복도, 휘황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 잘 생긴 목사님, 그리고 거룩한 예배의식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교회 밖 계단에는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흐느껴 우는 늙은 흑인 한 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무엇이겠습니까? 금 십자가입니까? 아닙니다. 파이프 오르간에도 하나님은 관심이 없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도 별것 아닙니다. 저 교회 밖에서 쭈그리고 흐느껴 우는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 어려움을 겪는 사람, 죄 속에 가슴 치는 사람, 그들이 하나님의 관심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통 받고 고난당하는 여러분들이 바로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사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고난을 결코 하나님만은 외면치 않으십니다. 보다 좋은 선하신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1.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 역시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또한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오직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3.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주인처럼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받으리라.” “그리하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주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고난을 이김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예수가좋다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