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의 피료한 자료방.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 할 때

에스더(은) 2020. 9. 17. 05:52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 할 때                  

 

 

글쓴이/봉민근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하지요.

"네 자신을 알라"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분수와 주제를 파악 하면서 살수만 있다면

하나님 앞에 더 겸손해 질수 있으련만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누가 자존심 건드리는 말을 하면 견뎌 하지 못한다.



섣불리 조언을 했다간 평생 원수가 되는 수도 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날마다 회개 했다고 하나 '나 '스스로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제대로 알고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않다.

그 누가 나의 허물을 말하면 몇 칠 몇 날을 두고 가슴에 새기고 분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데

스스로는 자신의 죄와 허물에 대하여 너무나 관대 하다는 것이다.


날마다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저녁마다 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애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나님은 오늘도 지은 죄 때문에 아파하며 상한 심령으로 통회하는 세리를 찾고 계신다.


지은 죄로 인해 세상에서도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내 집이 아니라 감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죄를 뉘우치고 자칭 의인의 옷을 벗고 회개의 옷을 입는 신앙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다. 


교회에 가서 사람들 잎에서  나는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거룩한 천사표 옷을 입고 행동을 하여도 하나님은 아신다.

나의 죄에 대하여 스스로 민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정한 회개란 나올 수가 없다.


기도하는 수많은 이유 중에서 그 이유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회개가 되어야 한다.

'나는 회개 하기 위해 기도한다' 고백 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 때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하는 기도는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도 참된 회개가 우선될 때에 비로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죄와 허물은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기도가 어찌 가증스러운 기도가 아니겟는가?


회개가 있어야 용서도 있고 신앙의 회복도 가능한 것이다.

회개는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를 인정 한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다.

회개없이 십자가를 말한 다는 것은 야만적이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십자가상에 우편 강도와 같은 회개를 할수 있어야 한다.

나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십자가 앞에서 취하여야 할 우리의 마땅한 태도다. 


십자가를 바라 보는 자는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요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며

가슴을 찢고 회개하는 자다.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말로만 내가 죄인이라 고백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죄 때문에 하나님이 죄인처럼 고난을 당 하시고 십자가를 지은 사건을 어찌

무감각하게 바라만 보며 작은 일로 여기는가?


천번 만번 잘못 했다고 무릎꿇고 빌어도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을 용서 하시고

사랑 하시는 주님을 더 이상 홀대하고 모른 척 해서는 안된다.

내 가슴에 주님의 피가 흐를 때에 심판의 칼이 나를 피하여 넘어 간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의 상한 심령을 받으시고 감싸 주시기를 원하고 계신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예수쟁이도 아니요 믿는 자도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주제를 파악하는 자만이 죄인임을 깨달을수 있다.

나는 나의 주제를 파악하고 있는가?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로 나는 죄인이라고 알고만 있는것을

회개하고 용서 받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인정 할 때 비로서 용서도 있고 

하늘 나라도 있는 것이다.


내가 목사,장로, 권사 대통령이면 무엇하겠는가?


믿음의 온전한 회개는 믿음의 완성이요 신앙의 아름다운 꽃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